클라우드 컴퓨팅의 역사와 발전 (上)
2025. 8. 28. 15:23

 

들어가며

오늘날 우리의 하루 일상을 들여다보면, 컴퓨터 자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스마트폰 앱을 실행하며, 게임을 다운로드하는 일처럼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컴퓨터 자원을 소비하고 있죠.

 

하지만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시절 컴퓨터는 한 건물 전체를 차지할 만큼 거대했고, 일반인은 그 앞에 서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크게 바뀌어 왔습니다.

 

어떤 장소에서 연산이 이루어지는지, 그 컴퓨터 자원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는지, 그리고 사용자가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제공받는지까지가 모두 시대의 기술 수준과 환경 변화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 것이죠.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컴퓨팅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대 순으로 살펴보고,
오늘날 클라우드 컴퓨팅이 가능해진 기술적·이론적 토대까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60년대 – 메인프레임 시대, 중앙집중식 컴퓨팅

 

1960년대의 컴퓨터는 ‘메인프레임(Mainframe)’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가격은 수십억 원에 달했고, 웬만한 기업 및 기관에서는 한 대를 돌아가며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대한 본체와 복잡한 운영 체계는 마치 제단처럼 느껴졌고, 그만큼 접근성은 제한적이었죠.

 

그러다 1964년, IBM이 내놓은 System/360은 그 규칙을 바꿔 놓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기계 한 대가 아니라, 컴퓨터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버린 혁명이었습니다.

 

당시의 메인프레임은 지금의 서버실보다 훨씬 거대한 장비였습니다.

 


호환성을 제시한 최초의 '컴퓨터 패밀리'

System/360 이전의 컴퓨터들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모델마다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가 달라,

성능이 더 좋은 신형 기계를 사더라도 기존 프로그램은 다시 처음부터 개발해야 했습니다.

 

IBM은 이런 불편을 근본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컴퓨터 패밀리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죠.

“ IBM System/360 Model 30 Computer - CPU (Type 2030), IBM, US, 1964 ” 작성자: Gautier Poupeau , CC BY 2.0

System/360은 하나의 아키텍처 위에서 성능과 가격대만 다른 여러 모델로 출시되었습니다.

덕분에 고객은 기존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필요하면 더 강력한 모델로 쉽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PC 라인업, 스마트폰 시리즈와 닮아 있습니다.

 


범용성을 통해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하다

System/360의 또 다른 특징은 범용성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컴퓨터는 과학 연구용 혹은

비즈니스용으로 구분되었지만, IBM 360은 양쪽을 모두 아우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플랫폼이 연구실과 기업 모두에서 쓰이게 된 것이죠. 이는 기술적 혁신에 그치지 않고,

컴퓨터 산업을 진정한 상업적 성공으로 이끌었으며, 이후 시장 표준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IBM System/360은 단순히 성능이 뛰어난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호환성과 범용성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며 오늘날 컴퓨터 구조와 시장의 초석을 닦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역사가들은 System/360을 컴퓨터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시스템 중

하나로 꼽습니다.

 


 

1980년대 –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 분산식 컴퓨팅

 

 

산업 표준을 제시한 IBM PC

1981년 여름, 거대한 기업 IBM은 한 장비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름은 IBM PC 5150.

그 순간은 단순히 새로운 제품의 출시가 아니라, 컴퓨터라는 존재가 취미를 넘어 

기업의 핵심 업무 도구로 자리 잡는 분기점이었습니다.

 

“ ibm computer pc 5150 ” 작성자: Fried Dough , Public Domain Mark

곧이어 델, 컴팩 등 경쟁 기업들이 IBM PC의 설계를 본떠 호환 PC의 클론 기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IBM이 만든 표준은 빠르게 전 세계 PC 시장의 기반이 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

이후 윈도우 운영체제와 결합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PC라고 부르는 컴퓨터의 형태가 완성됩니다.

IBM의 결정이 만들어낸 개방과 확산의 물결은 PC라는 개념 자체를 대중에게 열어젖힌 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IBM은 개방형 아키텍처라는 인상적인 전략을 선택했는데요. 당시 대부분의 기업은

제품의 설계와 부품 정보를 꽁꽁 숨겼지만, IBM은 달랐습니다. 설계와 부품 정보를 공개해

누구나 호환되는 부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이 선택은 예상보다 훨씬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앞다투어 IBM PC와

맞는 부품을 내놓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역시 IBM PC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 매킨토시가 열어젖힌 창의성의 시대

 

1984년, 슈퍼볼 경기 중계 시간에 한 편의 광고가 방영됩니다.
조지 오웰의《1984》를 연상시키는 영상 속에서, 한 여성이 스크린을 향해 망치를 던지며
체제를 깨뜨리는 장면이었죠.
이 장면은 애플의 매킨토시(Macintosh) 출시와 함께 역사에 남는 상징이 됩니다.

 

“ Macintosh - apple-128k ” 작성자: Mark Mathosian , CC BY-NC-SA 2.0

 

매킨토시가 던진 가장 큰 충격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였습니다.

IBM PC에서처럼 까만 화면에 명령어를 직접 입력하는 대신, 아이콘을 클릭하고 창을 옮기며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었죠. 마우스를 손에 쥔 순간, 누구나 복잡한 기술 지식 없이도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섰습니다. 매킨토시는 뛰어난 그래픽 처리 능력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덕분에 곧 출판·디자인·멀티미디어 분야에서 압도적인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책과 잡지를 직접 책상 위에서 편집·출판할 수 있다는

데스크톱 퍼블리싱(Desktop Publishing) 개념을 현실로 만들며, 개인 창작의 시대를 열어젖혔습니다.

 


개인화와 분산화의 시대

IBM PC와 애플 매킨토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PC 시대를 열었지만, 공통적으로

컴퓨팅의 개인화와 분산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컴퓨터는 소수의 전문가가 아닌, 모두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독립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데이터를 통합하고 공유하는 것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업으로 남았습니다.

 

 


 

1990년대 – 클라이언트-서버 구조, 네트워크 기반 컴퓨팅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인용 컴퓨터는 더 이상 고립된 기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PC가 네트워크로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클라이언트-서버(Client-Server) 구조

컴퓨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성능의 서버(Server)는 핵심 데이터를 저장하고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는 중심축이 되었고,

사용자가 사용하는 클라이언트(Client)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담당하며

서버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기업은 데이터를 중앙에서 통합 관리하며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고,

사용자는 각자의 PC에서 필요한 정보와 기능을 불러와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웹 서비스SaaS(Software as a Service)로 이어지는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연결한 혁명, 월드 와이드 웹(WWW)

 

클라이언트-서버 구조의 가능성을 전 세계로 확장시킨 주역은

바로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었습니다.

팀 버너스리 경이 제안한 이 시스템은 인터넷상에 흩어져 있던 문서들을 URL(주소) 하이퍼링크로 연결했습니다.

 

웹의 등장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정보가 마치 거미줄(web)처럼 엮이게 되었습니다.

 

 

HTML: 웹페이지의 구조와 내용을 정의
HTTP: 클라이언트와 서버가 데이터를 주고받는 규약
URL: 전 세계 문서의 고유한 위치를 지정

 

웹의 이 세 가지 기술은 단순히 웹사이트를 구현하는 기술 요소를 넘어, 클라이언트-서버 구조를

범지구적 정보 공유 체계로 확장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즉, 누구나 동일한 규칙에 따라 문서를 만들고,

이를 네트워크를 통해 주고받으며, 전 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주소로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연결망을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웹의 대중화를 이끈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월드 와이드 웹이 기술적 토대였다면, 이를 일상 속 경험으로 끌어낸 주인공은

1994년 등장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 였습니다.

 

넷스케이프는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넘어, 브라우저 전쟁(Browser War)의 서막을 알리며

인터넷 산업 자체를 본격적으로 성장시킨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Netscape Navigator 9”, Upwinxp, 위키미디어 공용, CC BY-SA 3.0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빠른 속도를 갖춘 이 브라우저는 곧 웹페이지를 보기 위한 사실상의

표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할 필요가 없었고,

단지 마우스를 클릭하며 웹을 탐험할 수 있었습니다.

 


협업과 연결의 시작

월드 와이드 웹과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로 대표되는 1990년대는 네트워크 기반 컴퓨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중앙 서버에 정보를 저장하고 클라이언트에서 이를 불러오는 구조는 기업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보 접근 방식또한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의 출발점이 되었고,

오늘날 클라우드와 모바일 환경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마무리

 

메인프레임에서 시작된 중앙집중식 컴퓨팅, 개인용 PC의 분산화, 클라이언트-서버 구조와

웹의 대중화까지. 지난 수십 년간 컴퓨팅의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컴퓨터를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일상과 산업 전반을 움직이는 인프라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1960년대 메인프레임: 중앙집중식, 호환성과 범용성의 초석
1980년대 PC와 매킨토시: 개인화와 창의성, 분산식 컴퓨팅의 출발
1990년대 클라이언트-서버와 웹: 연결과 협업, 정보 공유의 대중화

 

이 모든 흐름은 오늘날의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2000년대 웹 서비스의 확산과 클라우드 시대의 개막!

그리고 2006년 AWS 출시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더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더불어, 이 변화가 단순한 기술 진보에 그치지 않고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 데이터 활용 방식의 전환,

그리고 글로벌 IT 생태계의 재편으로까지 이어진 과정을 고찰해보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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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by. 

- 국립중앙과학관, [IBM 시스템/360]
- ETRI Webzine, [Special  ____월드 와이드웹 세계를 하나로 묶는 연결의 시작]
- 디지털데일리, [50살 IBM 메인프레임, “클라우드로 재조명”]

 

yeris (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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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대학생입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려 합니다 🐢